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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6·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총성이 멎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유대한민국의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키다 북한 땅에 끌려간 국군포로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 손주들이 아직도 자유대한민국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면, 6·25는 결코 끝난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포탄이 떨어질 때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 잊고, 국가가 외면하고, 사회가 침묵할 때 전쟁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계속된다. 국군포로들에게 6·25는 전장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강제노역과 감시, 차별과 굶주림 속에서 이어졌다.
그들의 가족들에게 6·25는 태어난 순간부터 따라붙은 낙인이었고, 북한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려난 삶 그 자체였다. 조국을 위해 싸운 아버지 때문에 자녀들이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역사는 대한민국이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국가적 비극이다.
더 참담한 것은 이들이 어렵게 자유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뒤에도 충분한 예우와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현실이다. 귀환 국군포로들은 국가를 위해 싸운 영웅이었지만, 현실의 대우는 영웅에 대한 예우와 거리가 멀었다.
오랜 세월 북한에서 겪은 고통과 상처, 가족 해체의 비극, 생계와 주거, 의료와 법률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다. 그러나 국가는 그 짐을 온전히 함께 짊어지지 않았다. 돌아온 뒤에도 또 다른 방치와 무관심 속에 놓였다면, 그것은 두 번째 버림이나 다름없다.
미귀환 국군포로들의 유족 문제는 더욱 뼈아프다. 아버지와 남편, 가족을 조국에 빼앗긴 것도 모자라, 그 후손들마저 대한민국 안에서 제도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들은 단순한 탈북민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군인의 가족이며,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전쟁 피해자이자 역사적 증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고, 제도는 이들의 특수한 고통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자유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정작 국가의 품 안에서는 내팽개쳐져 있다는 절규가 나오는 이유다.
국군포로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의 국가 책임 문제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군포로와 그 유가족을 단순한 복지 대상이나 행정 민원인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렀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으며,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구출되고 예우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조국을 위해 싸운 군인의 명예를 외면하는 것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말뿐인 추모와 형식적 기념행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존 귀환 국군포로에 대한 실질적 예우, 의료·생계·주거 지원, 유가족과 후손에 대한 법적 지위 정비, 명예회복과 기록사업, 미귀환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국제적 압박과 외교적 노력까지 종합적인 국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북한에서 태어나 차별과 고통을 겪은 국군포로 유자녀와 직계가족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원 체계와 역사적 보상이 필요하다.
국군포로의 이름이 사라진 나라, 그 유가족의 눈물을 외면하는 나라는 자유와 안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호국은 현충일 하루의 구호가 아니며, 보훈은 훈장과 화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보훈은 국가가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찾아내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6·25는 멈춘 전쟁이 아니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국군포로와 그 유가족이 자유대한민국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한, 그리고 돌아온 이들마저 대한민국 땅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감히 전쟁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끝나지 않은 6·25 전쟁. 이제 그 전쟁을 끝내야 할 책임은 살아남은 대한민국에 있다.
최·이·상 자유조선 대표